[공정언론뉴스]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 38건을 복원하여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한열 열사는 1987년 당시 민주화 시위과정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였고 이를 계기로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 복원된 기록은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한열 열사의 유품으로 고교생 시절의 기록과 압수‧수색 영장, 부검결과 등 87년 6월 당시 항쟁과 관련된 기록들이다.
특히, 이한열 열사의 일기 ‘My Life’, 고교생특별수련기, 어머니의 글 등 온라인으로 처음 공개된다.
※ 이한열기념사업회를 통해 현장 등에서 공개된 바 있으나, 온라인에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한열 열사 개인기록]
17세 고교시절 겨울방학 기간에 쓴 50여 일간의 일기‘My Life’에는 학생으로서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뿐만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진지함과 깊은 생각, 다짐,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등이 잘 나타나 있다.
* “나는 우리 선조들이 당한 수모를 이를 갈며 보았다...더욱더 힘을 길러 강국이 되어야 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의 가슴을 스쳐갔다....역사속에 만일이란 있을 수 없다.” (82.12.26) * “17세의 이 나이에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오늘은 한해를 보내는 기분이 다른때와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올해는 무엇보다도 정신적 바램이 컸던 해라고 본다. 나의 생각 나의 사상은 점점 어떤 확고한 가치관을 통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82.12.31) * “오후에는 ‘도산사상’이란 책을 읽었다.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성실”이란 두 글자가 내 마음을 몹시 흥분하게 했다. ‘성은 하늘의 도리요,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라’그렇다. 인간은 모든 일에 완전할 수 없다. 인간의 참 모습은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또 한층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들이다.(83.1.3)
또한 신문에 실린 새마을 수련회 참가기와 당시 부모님께 쓴 편지에는 수련을 통한 깨달음과 국민과 국가에 대한 이한열 열사의 성숙한 인식이 담겨져 있다.
* “나와 사회와 국가를 이을 수 있는 밧줄을 잡아당겨야 한다”,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길은 개개인의 의식을 바로잡아.. 튼튼한 겨레의 건물을 짓는 것” '고교생 특별수련기(1984)'
* “학과시간에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며, 제 자신을 이기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련을 통하여 지금까지 제 자신에게 결여되었던 점을 보충할 수 있었고, 좀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아버님, 어머님께 좀 더 걱정을 덜어드리고, 어엿한 자식이 될 겁니다.” '이한열의 편지(1984)'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기록]
이번 복원된 기록에는 이한열 열사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알 수 있는 기록도 있다.
'1987년 6월 9일 5시 5분경’으로 시작하는 어머니의 글에서는 학교로부터 위독한 상황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 겪었던 사건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 “ 우리는 떨리는 걸음으로 중환자실 문으로 들어갔다. 우리 한열이가 왜 그래요? 정말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없고 코, 입, 산소 호흡기를 온몸에 착용해서 이름도 모르는 기계에 의해 호흡하고 있었으니...27일 동안을 말 한마디 못해 보고... 한열이는 7월 5일 2시 5분에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글(1987)'
[6월 항쟁 관련 기록]
6월 항쟁과 관련한 기록에는 사망 이후의 ‘압수‧수색 검증영장’과 ‘부검결과 이물질 규명 중간보고’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이중 중간보고는 이한열 열사의 당시 주치의가 부검과정을 수기로 남긴 1페이지 기록으로, 이열사의 머릿속에서 발견된 이물질의 분석내용과 직접적인 사인이 ‘최루탄 피격’임을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6월 항쟁의 현장이 담겨있는 사진도 대거 복원됐다. 명동성당 시위 현장, 이한열 열사 영결식 때 이애주 선생의 살풀이 춤, 영결식에 참여한 연세대 백양로 인파 등의 사진이 복원됐다.
아울러 ‘민주국민장 실황’이 녹음되어 있는 오디오 테이프(오디오 파일)를 복원했다.
오디오 파일에는 ‘1987년 7월 9일 거행된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故문익환 목사의 추도사와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오열하는 음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복원된 기록들은 지난해 5월 이한열기념사업회에서 국가기록원에 복원 지원을 요청하여, 올해 2월 중순부터 약 3개월에 거쳐 완성됐다.
당시 기록들은 산성화와 물 얼룩에 의한 재질변색, 오염, 찢김 등 물리적 손상이 있었으며 탈산제에 의한 백화현상으로 가독성이 저하된 상태였다.
국가기록원은 기록물의 훼손상태를 정밀진단해서 클리닝과 오염제거, 결실부 보강, 중성화 처리를 통해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인화 사진의 경우는 이물질‧얼룩‧스크래치를 제거하고 고해상도 디지털파일로 복원하였으며 아날로그 테이프도 디지털화하였다.
국가기록원은 2018년부터 전문인력과 보존환경·예산이 열악한 민간·공공기관의 훼손된 중요기록물 대상으로 7,200여 매(60개 기관)를 복원처리를 지원한 바 있다.
복원된 기록물은 국가기록원 누리집에서원문을 볼 수 있다. 향후 이한열기념사업회, e-뮤지엄에서도 공개될 예정이다.
이경주 이한열기념사업회 관장은“이한열의 기록은 1980년대 사회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나서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며 “후대의 사람들은 이 기록을 통해 그 시대와 생생하게 만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한열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이한열과 그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기록을 세심하게 보관한다고 하였으나 사립박물관이 갖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국가기록원에서 복원 지원 사업으로 귀중한 자료를 복원할 수 있게 되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곽 정 국가기록원 복원관리과장은 “이한열 열사의 생애기록과 6월 항쟁 기록은 80년대 시대상과 민주주의 역사를 대변하는 중요한 현대사 기록이며 필사본이자 유일본으로 그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아울러, 6월 9일 기록의 날에 맞춰 국민들께 제공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며, 앞으로도 국가기록원은 기록의 날의 의미를 되살려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