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밤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종북 세력을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헌법이 규정한 계엄 요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위헌적 조치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만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전시도, 사변도 아님은 자명하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종북 세력의 위협'이나 '입법 독재'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야당의 탄핵소추권 행사나 예산안 심의는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1호의 내용이다. 국회와 정당 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1972년 유신체제 선포 당시의 계엄령에 따른 포고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때도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즉각적인 반발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한동훈 대표조차 "잘못된 결정"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는 새벽 긴급회의를 소집해 재적 과반수의 압도적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헌법은 이 경우 대통령이 반드시 계엄을 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인 비상계엄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 명분이 '종북 세력 척결'이라는 시대착오적 레토릭(rhetoric)이라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된 체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도전받고, 수호해야 하는 가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보완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에 대한 더욱 엄격한 제한이 필요하다.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의 법적 책임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 헌법학자들은 이번 계엄 선포가 명백한 탄핵 사유가 된다고 지적한다. 군 지휘부와 행정부 각료들도 위헌적 명령에 동조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다시 한 번 민주주의의 혹독한 겨울을 맞이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위기가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44년 전 그때와 같이 더욱 굳건하고 희망찬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