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논란’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의 정보 생태계와 디지털 환경에서 드러난 신뢰 위기의 단면이었다.
계엄이라는 단어는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언론과 유튜브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 심각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단순한 오보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넘어, 신뢰 기반 사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과제로 자리 잡았다.
일부 언론은 공정성을 잃은 보도로 국민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지난 12일 MBC의 자막 실수 논란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중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라는 발언에서 ‘함께’를 누락한 자막은 단순한 실수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3일 보도된 MBC의 ‘당근칼 주의보’ 기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초등학생이 "여자애들도 해요"라고 말한 내용을 "여자애들 패요"로 자막 처리하며 큰 논란을 빚었다. 이는 공영방송으로서 신뢰를 무겁게 재고하게 한다. 앵커와 담당 기자의 사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지만, 공영방송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책임감을 요구받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유튜브 역시 논란에 자유롭지 않다. 정보의 민주화를 주장하며 성장해온 유튜브는 이제 가짜뉴스와 자극적인 콘텐츠의 온상이 되고 있다. 일부 유튜버들은 연예인,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허위 정보를 퍼뜨리거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조작된 뉴스를 제작하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일부 극우 성향 유튜버들은 연예인을 반미주의자로 몰아가며 CIA에 신고하자는 터무니없는 선동까지 벌였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품격을 훼손하고,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은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은 실수조차 국민의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하며, 사실 검증 시스템과 사전 검토 절차를 더욱 철저히 운영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독립된 검토 위원회를 두고, 편집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플랫폼 기업 역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유럽의 사례처럼 허위정보를 신속히 삭제하고 신고 시스템을 강화하는 법적 의무를 플랫폼에 부여해야 한다.
한국도 플랫폼이 단순한 기술 제공자를 넘어, 정보의 질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허위정보 감지와 삭제를 위한 AI 알고리즘을 강화하고 이를 점검할 독립적인 감사 기구를 설립하는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
교육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온라인에서 읽은 정보를 그대로 믿는다고 답한 반면, 그 신뢰성을 검증하거나 출처를 비교하는 능력은 OECD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이런 상황 속 핀란드와 싱가포르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핀란드는 가짜뉴스 식별 교육을 정규 교과 과정에 포함시켰고, 싱가포르는 초·중·고 전 학년에 걸쳐 정보 검증 교육을 의무화했다.
한국도 자유학기제와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활용하면 추가적인 비용 없이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또한 성인 대상의 정보 검증 훈련 프로그램도 병행되어야 한다. 언론과 공공기관이 협력해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정보 검증 도구와 지침을 제공하며, 국민이 이를 실생활에서 활용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SNU 팩트체크’ 같은 비영리 팩트체크 플랫폼을 복구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계엄 논란은 단순한 정치적 사안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진실을 추구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뢰 회복은 언론, 플랫폼, 교육,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내는 힘은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사회적 시스템의 협력에서 나온다. 이제 우리 모두가 정보 신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