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용 기자.>
지난 17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AI 디지털 교과서 수업설계안 개발에 참여 중인 교사들이 상호 피드백 그룹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구글 드라이브에 암호화된 엑셀파일을 탑재하고,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러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엑셀파일을 열람하거나 다운로드할 때 암호 설정이 해제되는 현상이 발생, 수업설계안 개발에 참여 중인 교사 957명의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개인정보 보호의 사각지대와 디지털 교육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교사 개인정보가 쉽게 유출된 사실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이후 학생들의 민감한 학습 데이터와 개인정보가 과연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단순한 관리 실수가 아니라, 디지털 교육 전환의 준비 미흡과 구조적 취약성을 경고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술적 혁신이 반드시 학습의 질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시스템과 허술한 관리 체계는 디지털 교육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 교육 전환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 그에 따른 위험 요소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는 이러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학습을 제공한다는 이상적인 목표는 준비 부족과 기술적 한계 앞에서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혼란이 예상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4년 3월 도입을 앞두고 있지만, 최종 교과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교사들은 제한된 연수 기회 속에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하며, 촉박한 일정 속에서 충분한 검토와 안정적 시스템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디지털 교과서가 자칫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하고 학생들에게 단순히 획일적인 학습 피드백만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전에 교육 당국은 학생과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시스템적 문제를 보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핀란드와 싱가포르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두 국가는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전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선행하며, 학생과 교사가 디지털 도구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의 도입 속도나 범위가 아니라, 이를 통해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 역량과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민감한 데이터를 철저히 보호하지 못하는 디지털 교과서는 결코 공교육의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공교육의 본질과 미래 교육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따른 기술 도입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수단이 되려면, 디지털 전환의 속도와 방식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은 교육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디지털 교육의 성공 여부는 기술 자체가 아닌,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교육의 가치와 방향성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