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법체계가 심각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9일 박정훈 前해병대 수사단장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은 군 조직 내부의 지휘 체계와 사법 정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항명 여부를 넘어, 군 지휘 체계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와 군 사법체계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중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판결은 군 조직 내에서 위법한 명령을 부정할 수 있다는 판례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열었다. 재판부는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이 사건 이첩 보류를 명령했는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군 내부의 명령 전달 체계와 의사소통 구조가 얼마나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군 명령은 명확하고 정당해야 하며, 그 기록은 투명하게 남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그러한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명령이 부당하거나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거부하거나 문제 제기할 수 있는 군 내부의 체계가 부재함을 드러냈다. 이는 군 조직이 더 이상 전통적인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군의 공정성과 민주적 가치를 구현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또한, 이번 사건은 군 사법체계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 박 대령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은 부당한 외압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군 지휘 체계가 정치적 영향을 얼마나 쉽게 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군은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로서, 정치적 중립성과 사법적 독립성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군 내부 사법 시스템이 권력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을 심화시켰다.
군검찰은 박 대령에게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하며 그의 행동이 군 지휘 체계와 기강을 저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위법한 명령에 저항한 행동이 군 내부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을 요구하는 정당한 행위로 평가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군 사법체계가 단순히 기강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정의와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기구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한다.
이미 2022년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이번 사건의 2심 재판은 민간 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군 사법체계 개혁의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군 사법체계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고,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군은 이번 사건을 통해 명령 전달 체계와 내부 의사소통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부당한 외압에 의해 내려진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문제를 제기한 군인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이 판결은 단순히 박 대령 개인의 무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군 조직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군 사법체계를 개혁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군도 공정성과 정의를 지향하는 민주적 성질을 띠어야 하며, 이는 현대 군 조직의 필수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군 내부의 모든 구성원은 정의와 공정성이라는 기본 원칙을 공유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법적 승패를 넘어, 군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군 사법체계는 이제 공정성과 정의를 중심에 두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