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헌 논의, '정치질' 아닌 책임 정치로 시작돼야 한다

2025.04.07 13:29 입력 조회 5,192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6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 이틀 만에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위헌 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친 지금이야말로 개헌의 시기라는 취지다. 권력 분산과 협치의 제도화를 통해 국민투표법 개정과 국회 개헌특위 구성의 필요성은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시점과 방식이다. 국정은 여전히 혼란 속에 있다. 비상계엄 선포와 군 투입, 국회 장악 시도 등으로 인해 헌정 질서가 무너졌고, 그 여진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다. 국정의 회복과 신뢰의 재건이 선결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장이 개헌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은 시기상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개헌은 오랫동안 우리 정치의 구조적 한계로 지목돼 왔다. 1987년 개정된 헌법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와 다수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문제 제기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다섯 명의 대통령 중 세 명이 퇴임 후 사법 처리됐고, 두 명은 탄핵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민들도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과반 이상의 응답자가 대통령 권한 분산과 4년 중임제 개헌에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헌이라는 중대한 정치 개혁을 논의할 때는 무엇보다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 지금은 그 신뢰가 무너진 시기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향해 ‘내란당’과 ‘반민주 세력’이라 지칭하며 상대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 사법부 사이의 균형과 견제가 무너졌고, 헌법기관 간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민주적 질서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을 꺼내는 것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또 다른 정치 셈법의 시작으로 읽힐 뿐이다.

 

국민들은 탄핵을 통해 입증된 사실에 아직 분노하고 있다. 광장의 목소리는 권력의 폭주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준엄한 경고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아직도 메아리치고 있는 시점에서, 국회마저 개헌 논의를 ‘정치적 카드’처럼 활용한다면, 이는 민심과 동떨어진 행위가 된다. 더구나 개헌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다. 권력구조, 선거제도, 사법개혁, 기본권 확대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국가의 골격을 바꾸는 논의가 소수 정치인의 입장 정리에 따라 요동쳐서는 안 된다.

 

우원식 의장의 진심이 단순한 정치 이벤트가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개헌을 진정 원한다면, 절차와 방식에서부터 국민의 신뢰를 얻는 접근이 필요하다. 국회의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을 일방적으로 제안하기보다, 각 당의 충분한 숙의와 사회 각계의 논의를 이끌어내는 조정자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신뢰받는 개헌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까'다. 그 출발은 정치인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 가능해진다. 국민은 더 이상 말의 성찬에 기대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품격 있게 절제하고, 책임 있게 행동할 때 개헌 논의도 비로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공정언론뉴스 기자 edit@fp-news.co.kr]
<저작권자ⓒ공정언론뉴스 & fp-new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