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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TV토론은 유권자에게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공적 무대다. 후보자들은 이 자리에서 국가 비전과 정책 역량을 겨루며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지난 27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이 무게를 가볍게 넘겼다.
이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을 거론하며 성희롱성 표현을 인용했다. 발언의 출처는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음란 댓글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문제의 문장은 실제 확인된 바 없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야 이 후보는 해당 표현이 과했다며 순화 표현을 따로 설명했고, 사흘 뒤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린 후였다.
이 장면이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한 말의 수위가 아니었다. 이는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자리에서, 확인되지 않은 가족의 표현을 근거로 타 후보를 공격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당 발언은 ‘정치개혁’과 ‘양극화 해소’라는 토론 주제와도 무관했다. 공론장을 검증의 장이 아닌 조리돌림의 공간으로 만든 셈이다.
사실 이재명 후보 아들 이동호 씨가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연예인과 일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성 게시글을 반복적으로 올린 것은 명확히 드러난 사실이다. 2022년부터 수사를 받아 2024년 10월 수원지법에서 모욕 및 도박 혐의로 벌금 500만 원 약식명령이 확정됐다.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당시 국민 앞에 직접 사과한 바도 있다. 죗값을 치르고, 정치적 책임도 졌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이준석 후보는 해당 사안을 다시 꺼내 “이런 사람이 나라를 맡을 자격이 있느냐”고 몰아세웠다. 사적 영역의 죄를 끄집어내 공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유권자 앞에선 국가의 책임을 말하면서도, 그 근거는 사생활의 그림자였다.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이 후보 개인만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연일 논평을 이어가며 이재명 후보 아들의 도박 자금 출처까지 문제 삼았고, 진상조사단까지 꾸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내용은 대부분 과거 수사와 판결 결과를 반복한 수준이다. 새로운 물증이나 판결은 없었다. 오히려 사법적으로 마무리된 사건을 정치적으로 다시 부각시키는 방식은 ‘공적 책임’이 아니라 ‘감정 동원’에 가깝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 치러지는 국가 지도자 선출의 장이다. 국민은 실망이 아니라 설득을 원한다. 그런데 유세장이 아닌 TV토론에서조차 확인되지 않은 발언이 등장하고, 그것이 가족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정치의 무게는 질문받아 마땅하다.
정치는 검증의 과정이다. 그러나 그 검증이 도를 넘는 순간, 유권자의 신뢰는 정치가 아닌 불신의 프레임으로 흘러간다. 이준석 후보가 꺼낸 한 문장은 단순한 수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이 다룬 방식, 발화된 장소, 연결된 의도 모두가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다면, 정치는 그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공적 자리는 가족을 끌어들이는 공간이 아니다. 더는 사생활로 정치의 공백을 채우려 해선 안 된다. 유권자는 증오의 프레임이 아니라, 정책과 비전의 언어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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