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가 끝나고 본투표만 남았다. 선거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여론은 벌써 ‘부정선거’라는 단어를 되새긴다. 2년 전, 4년 전과 닮은 기류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그 확산을 단지 유권자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 중심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치러진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시기다. 그런 선거의 첫 관문이었던 사전투표 첫날, 선관위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투표지가 봉투 없이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초반에 “승인을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결국 스스로 해명을 정정했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사실 “선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아직 그 어떤 구체적 증거도 없다. 그러나 “이 정도밖에 관리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이미 드러났다. 그래서 더 위태롭다.
이번에도 흐름은 비슷했다. 사전투표 이틀 동안 퍼진 한 영상은 ‘외국인 투표’ 의혹을 촉발시켰다. 선관위는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제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상 속 인물은 외관상 외국인으로 보였고, 그 인물이 실제로 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은 선관위가 아닌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제도는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실제 상황을 증명한 주체는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제도를 설명하는 선관위는 있어도, 신뢰를 설득하는 선관위는 없었다. 영상 하나, 게시물 하나로 의혹은 다시 확산됐다.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졌다.
선거를 운영하는 주체가 설명을 미루면, 그 공백은 시민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상상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가짜뉴스가 되어 번져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사법기관이 채운다. 언론은 사건이 번진 후에야 정정을 쫓는 역할에 그친다.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가 감당해야 했던 일은 단순한 절차의 관리가 아니었다. 제도적 설계의 취지를 납득시키고, 오해가 자라지 않도록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전투표지 유출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는지, 귀화 유권자의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은 이번에도 늦었고, 정정은 뒤따랐다.
선거는 국가가 관리하지만, 신뢰는 시민이 만든다. 그리고 시민이 신뢰를 만들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를 제공할 책임은 선거관리 기관에 있다. 지금의 선관위는 그 역할에 설득력 있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부정선거’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그 의혹이 왜 반복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건 음모론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설계한 시스템의 응답 방식에 관한 질문이다.
남은 본투표, 그리고 개표. 아직 늦지 않았다. 선관위는 더 이상 침묵하거나 기다려선 안 된다. 말이 아니라 구조로, 해명이 아니라 정보로 증명해야 한다. 신뢰는 설득이 아닌 증명으로 세워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국민은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설명을, 설득을 기다리고 있다.
<송세용 기자.>
사전투표가 끝나고 본투표만 남았다. 선거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여론은 벌써 ‘부정선거’라는 단어를 되새긴다. 2년 전, 4년 전과 닮은 기류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그 확산을 단지 유권자의 몫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 중심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있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치러진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시기다. 그런 선거의 첫 관문이었던 사전투표 첫날, 선관위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투표지가 봉투 없이 외부로 유출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초반에 “승인을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결국 스스로 해명을 정정했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사실 “선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은 아직 그 어떤 구체적 증거도 없다. 그러나 “이 정도밖에 관리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이미 드러났다. 그래서 더 위태롭다.
이번에도 흐름은 비슷했다. 사전투표 이틀 동안 퍼진 한 영상은 ‘외국인 투표’ 의혹을 촉발시켰다. 선관위는 “외국인은 대통령 선거에 투표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제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상 속 인물은 외관상 외국인으로 보였고, 그 인물이 실제로 귀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은 선관위가 아닌 경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제도는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실제 상황을 증명한 주체는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제도를 설명하는 선관위는 있어도, 신뢰를 설득하는 선관위는 없었다. 영상 하나, 게시물 하나로 의혹은 다시 확산됐다. 더 빠르게, 더 넓게 퍼졌다.
선거를 운영하는 주체가 설명을 미루면, 그 공백은 시민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상상은 확신이 되고, 확신은 가짜뉴스가 되어 번져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사법기관이 채운다. 언론은 사건이 번진 후에야 정정을 쫓는 역할에 그친다.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가 감당해야 했던 일은 단순한 절차의 관리가 아니었다. 제도적 설계의 취지를 납득시키고, 오해가 자라지 않도록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사전투표지 유출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는지, 귀화 유권자의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선관위의 해명은 이번에도 늦었고, 정정은 뒤따랐다.
선거는 국가가 관리하지만, 신뢰는 시민이 만든다. 그리고 시민이 신뢰를 만들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를 제공할 책임은 선거관리 기관에 있다. 지금의 선관위는 그 역할에 설득력 있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부정선거’를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그 의혹이 왜 반복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건 음모론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설계한 시스템의 응답 방식에 관한 질문이다.
남은 본투표, 그리고 개표. 아직 늦지 않았다. 선관위는 더 이상 침묵하거나 기다려선 안 된다. 말이 아니라 구조로, 해명이 아니라 정보로 증명해야 한다. 신뢰는 설득이 아닌 증명으로 세워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국민은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설명을, 설득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