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물러나는 대통령, 남겨진 국민… 이제는 ‘정치’가 답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정사 두 번째다. 122일 전,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순간부터 예견된 결말이었다. 그러나 예견은 언제나 예외를 내포한다. ‘설마’라는 물음이 수없이 맴돌았고, 국민은 법의 판단을 기다리며 광장을 채웠다. 그리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헌정은 흔들렸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다.
이번 파면은 단순한 정치의 실패가 아니다.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가 움직였다는 건, 그만큼 정치가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방증한다. 대통령은 국정을 책임지기보다 국회를 밀어내려 했고, 야당은 견제를 넘어 장악으로 나아갔다.
탄핵은 그렇게 현실이 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문제는 단 하나였다. 정치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정치가 무엇인지를 끝내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사로서의 경험과 판단은 강력했지만, 그 강직함은 오히려 국정에선 독이 됐다. 갈등은 조정하지 못했고, 야당은 협치의 상대가 아닌 처벌의 대상이었다. 계엄령이라는 초강수까지 불사하며 체제를 지키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은 체제를 무너뜨렸다.
정치는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이며,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헌법은 그 정치의 상위 문서이고, 대통령은 그 정점에 선 사람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하는 순간, 정치는 존립 근거를 잃는다. 이번 사건이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탄핵을 선택하게 만든 이유다.
그러나 이 파면을 민주주의의 승리로만 읽는다면 또 다른 오류다. 대통령 탄핵이 8년 만에 두 번째라면, 우리 헌정 체제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서로 다른 인물, 다른 성격의 통치였지만 결국 두 대통령 모두 권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문제는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야당 역시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다. 절대다수 의석을 쥐고 입법 폭주를 일삼았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이어갔다. 국회를 헌법의 요체로 본다면, 그 국회를 도구로 만든 정치세력 역시 헌정의 파괴자였다. 대통령이 계엄령으로 국회를 압박했다면, 국회는 입법으로 대통령을 질식시켰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전체가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광장의 분열, 가족 간의 갈등, 경제와 민생의 파탄. 누가 책임질 것인가. 윤 전 대통령 한 사람의 퇴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파면은 결과일 뿐, 과정의 누적이다. 그리고 이 혼돈의 계절을 지나 대한민국은 다시 대선을 맞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실패한 대통령을 뽑아서는 안 된다. ‘덜 나쁜 선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상대 진영의 패배’만을 목적으로 한 투표는 또 다른 실패를 낳을 것이다. 국민은 이미 알고 있다. 도덕성, 소통 능력, 협치의 자세. 그것이 지도자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문제는 그런 인물을 선택할 수 있는 정당과 제도가 준비돼 있는가이다.
정치는 국민을 배신해도, 국민은 결코 헌법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 믿음이 오늘의 결정을 가능케 했다. 그렇다면 이제 정치가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분열의 시간을 끝내고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것이 유일한 헌법 수호의 길이다.
대한민국은 아직 살아 있다. 이 참혹한 헌정의 비극을 통과하며,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전제는 단 하나다.
이제는 ‘정치’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